「7」 윤봉길 의사 암장지 (노다야마)
- 民団 石川
- 9월 2일
- 1분 분량

1932년 12월 20일, 일본군은 「윤봉길 의사의 유해를 화장했다」고 발표했지만, 실제로는 극비리에 처형장에 인접한 노다야마 묘지 관리사무실로 통하는 계단 밑에 유해를 암장했습니다.
1945년 8월 15일 광복을 맞이한 뒤, 김구 선생의 지시를 받은 박열 선생(한국 민단 초대 단장), 이강훈 선생(한국 민단 초대 부단장) 은, 서상한 선생을 발굴단장으로 하는 「윤봉길 의사 유해 발굴단」을 조직하였고, 발굴단은 도쿄를 출발하여 1946년 3월 초에 가나자와에 도착했습니다.
서상한 선생은 당시의 재일본 조선인연맹에 소속된 청년들에게 협력을 요청하여, 노다야마의 공터를 파 나가면서 발굴 사업이 시작되었습니다. (그 모습을 찍은 단체사진도 남아 있습니다)

1946년 3월, 유해 발굴단의 3일간의 조사 끝에 마침내 발견된 장소는 묘지에서 벗어난 구역으로, 관리사무소로 이어지는 계단 아래의 평지였습니다. 그곳에는 봉분도 표식도 없었으며, 약 14년 동안 많은 사람들이 오가며 알게 모르게 윤봉길 의사께서 묻혀계셨던 땅을 밟고 지나다녔습니다.

이 장소는, 고 박인조 선생을 중심으로 한 재일 동포들과 일본 시민들에 의해 암장지 정비 사업이 진행되었고, 1992년 12월 19일에는 「암장의 비석」이 건립되었습니다. 현재는 월진회 일본지부 및 일본인 시민단체 「윤봉길 의사 토모노카이 (공우회,共の会)」을 비롯, 한국 예산군의 월진회를 비롯한 많은 단체의 관리와 지원에 의해 소중하게 관리되고 있습니다.
「주변 볼거리」
「교통 정보」
「가나자와역 출발」호쿠테쓰 버스(北鉄バス) 「노다센코지선(野田専光寺線)」으로 약 20분, 「노다야마」 하차 후 도보로 이동.(약 60분/400엔)
「택시 이용하는 경우」「노다야마 묘지 관리사무소(野田山墓地管理事務所)」또는「이시카와현 전물자 묘지(石川県戦没者墓地)」하차(약20분、3,000円)
「차량 이용하는 경우」구글 맵 등 네비게이션 이용 후 순국기념비 주차장에 정차



